해공 신익희선생 56주기 추모식 거행
해공 신익희선생 56주기 추모식 거행
우리 대학의 초대 학장이시며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 내무·외무총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광복 후에는 국회의장으로서 의회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으신 해공 신익희 선생 56주기 추모식이 5일(토) 서울 수유리 묘전에서 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회장 남덕우) 주관으로 열렸다.
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윤종웅 총동문회장을 비롯한 유지수 모교 총장, 정양성 보훈처 차장, 김유길 광복회 부회장, 목요상 대한민국헌정회장, 유가족 대표 등 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날 추모식은 남덕우 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의 개식사와 약력보고, 추모사, 참석 내빈들의 헌화 및 분향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남덕우 회장은 “본인은 신익희 선생이 설립한 국민대학교 최초의 입학생이며 선생님의 제자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소회를 밝히고 “신익희 선생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을 자주하셨는데 이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을 가르친 것으로 56주년을 맞은 오늘 선생님의 위대한 애국업적이 가슴에 더욱 사무친다”고 추도사를 했다.
모교 유지수 총장은 추모사를 통해 “해공 신익희 선생님께서 남기신 숭고한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발전시킬 것을 다짐하며, 우리 학생들이 不忘救國, 實踐躬行을 강조하던 선생님의 유지를 따라 국가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하여 지도하겠다.”고 다짐하였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1894년 7월 1일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 67번지 속칭 산마루 마을에서 평산 신씨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1913년 귀국해 고향에 동명강습소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 교수가 됐다.
1919년 3․ 1운동 당시에는 외국어 능력이 탁월해 해외 연락업무를 맡았으며, 역사적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 임시정부 수립과 동시에 법무․내무․외무차장, 국무원 비서장, 법무․외무총장, 내무․외무․문교부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임시정부를 통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49년 민주국민당을 결성, 위원장에 취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에 피선됐으며, 1956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해 호남지역 유세를 위해 열차로 이동 중 차내에서 서거. 수유리 4․19묘지에 안장했으며, 1962년 정부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